목회단상 12172023 “눈을 들어 위의 것을 찾으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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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미국에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길을 가다 5달러짜리 지폐를 주웠습니다. 당시에는 제법 큰 돈이었습니다. 공짜로 돈이 생기니까 너무 좋았습니다. 계속 그런 일이 있을까 싶어 땅만 보고 다녔습니다. 나중에는 그게 습관이 됐습니다. 그가 평생 땅만 보며 주운 것을 계산해 보니 이랬습니다. 단추 2만 9천여 개, 머리핀 5만 4천여 개, 동전 수천 개, 그 외에 자질구레한 것들을 이것저것 많이 주웠습니다. 그는 땅만 보느라 푸른 하늘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넝마주이로 인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에서 무엇에 시선을 두고 사느냐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지금 어디를 보고 살아가시는지요.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가 한번은 시골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 교회의 젊은 목사는 가정과 목회 문제 때문에 큰 좌절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웨슬리가 이 젊은 목사와 함께 기도를 하고 나오는데 마침 외양간에 소가 있어 바라보니 소는 고개를 한껏 쳐들고 외양간 벽을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웨슬리는 젊은 목사에게 “저 소가 어째서 고개를 들고 있는지 아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웨슬리는 젊은 목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벽이 있기 때문이죠. 사람도 앞에 벽이 있으면 고개를 들어야 합니다. 눈이 제일 위에 있는 것은 빨리 위로 눈을 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앞에 벽이 있다고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벽이 있기 때문에 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나니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롬 8:24∼25)고 말씀합니다.
독일의 바바리아라는 성에 루드비히(Ludwig) 공작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고 괴롭히는 포악한 사람이었기에 모든 사람이 두려워했습니다. 어느 날 공작이 한 작은 예배당에 들어가 모처럼 기도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예배당 벽에 무슨 글씨가 쓰이는 것입니다. 순식간에 보였다가 사라졌기에 앞부분만 기억났습니다. 삼일인지, 석 달인지, 삼 년인지 아무튼 그 안에 무서운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제껏 죄를 많이 지었던 공작은 나름대로 해석하기를 ‘삼일 안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삼 일 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아주 잘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삼 일이 지났지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공작은 다시 생각했습니다. “삼 일이 아니라 석 달이었구나.” 그래서 석 달 동안 또 주위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석 달이 지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공작은 그제서야 확신을 가졌습니다. “삼 년이었구나.” 그래서 3년 동안 열심히 선행을 베풀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나팔 소리와 함께 독일 왕실에서 사절단이 왔습니다. 바로 루드비히 공작을 독일의 황제로 모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루드비히 공작이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다시 그에게 찾아오실 주님에 대한 ‘기다림’ 때문이었습니다.
이천 년 전 오셨던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눈을 주께로만 향해야 합니다. 눈을 들어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메시지를 보기 위하여, 주의 깊게 믿음을 살펴야 합니다. “위의 것을 찾으라(set your hearts on things above-NIV)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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