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20250615 “사랑할 수 있음이 큰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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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거지가 큰 부자인 랍비의 집 대문 기둥에 등을 비벼 긁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목격한 부자 랍비는 그를 불쌍히 여겨 데려다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히고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이튿날, 이 이야기를 들은 거지 부부가 어제의 그 거지처럼 부자 랍비의 집 대문 기둥에 등을 비비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를 보게 된 랍비는 그들을 잡아들여서 실컷 매를 때리고 쫓아내었습니다. 거지 부부가 쫓겨나면서 불공평하다고 불평하였습니다. 이에 랍비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어제의 거지는 혼자이니 기둥에 비벼서 긁을 수밖에 없었지만, 너희는 둘이니 서로 긁어줄 수 있지 않느냐?” 거지 부부의 죄는, 서로 돕지 않은 죄였습니다.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있음을 기뻐하며 사랑합시다.
메리 앤 버그라는 여류작가가 쓴 <속삭임 테스트>란 글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놓은 경험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나는 언청이로 태어났습니다. 학교에 다니게 되었을 때, 학교 친구들은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나는 입술이 찢어지고 코가 비뚤어졌으며 치열이 고르지 못하고 발음도 정확하게 하지 못하는 어린 소녀였습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도록 배웠습니다. 친구들이 ”입술이 왜 그렇게 된 거냐?“ 라고 물으면, 나는 넘어져서 유리 조각에 다쳤다고 대답했습니다. 남과는 다르게 태어났다는 것보다는 사고가 났었다고 하는 편이 더 견디기 쉬웠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족들 외에는 누구도 나를 사랑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내가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레너드란 여선생님이셨습니다. 다들 그분을 좋아했습니다. 그녀는 키가 작고 통통하며 행복하고 활기가 넘치는 부인이었습니다. 매년 우리는 듣기 평가를 받았습니다. 레너드 선생님은 학급의 모든 학생을 불러 시험을 치렀고,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문을 등지고 서서 한쪽 귀를 막고 서 있으면 선생님이 자기 자리에 앉은 채 어떤 문장을 작은 소리로 속삭여주었고 우리는 그것을 따라 말해야 했습니다. 이를테면, ‘하늘은 푸르다’ 혹은 ‘너는 새 신을 가지고 있니?’ 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나도 역시 그곳에 서서 선생님의 속삭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짧은 문장은 내 인생 전체를 변화시켰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녀의 입에 넣어주신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레너드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내 딸이었으면 좋겠다.’”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지식도, 프로그램도 아니라 진심을 담은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된 우리에게 “네가 내 자녀였으면 좋겠다” 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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