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예수님은 참된 친구가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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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의 속내를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진실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그 사람은 불행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친구라는 존재는 소중합니다. 누구에게나 진정한 소통을 이루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친구, 그런 친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람은 사회적 유대가 고립될수록 위기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사회 구성원들의 건강은 더욱 나빠지고 사망률도 높아집니다. 어르신들을 요양원에 모셔다 놓으면 빨리 죽는 이유는 그 속에서는 건강한 유대관계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단절이 많은 시대, 더 소통하고 친구를 만들어 가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매일 정오만 되면 교회에 들어가는 짐이라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들어 간지 2,3분 만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루는 관리인이 교회 문을 나서는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로 교회에 들어갔다 나오십니까?” “그야 기도하고 나오는 길이지요.” “기도라니요? 그 짧은 시간에 무슨 기도를...?” “저는 길게 기도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늘 이렇게 기도 합니다. ‘예수님! 저 왔습니다. 저 짐입니다.’”
얼마 후, 노인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노인이 들어온 이후로 병실에서는 늘 웃음이 떠날 날이 없었습니다. 이상히 여긴 간호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서는 이 병실의 환자들에게 웃음을 주고 계신다면서요?” “음, 내가 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지. 이건 모두 다 나를 찾아오는 그 방문객 덕분이야. 그 사람이 내게 늘 기쁨을 주고 가거든”
간호사가 평소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노인에게 방문객이 있다는 말에 의아해 하면 물었습니다. “방문객이라뇨? 도대체 언제 찾아오나요?” “날마다 정오가 되면 나를 찾아오지. 그리고 그분은 나에게 이렇게 말씀 하신다우. ‘짐, 잘 있었나? 나 예수야!!’” 평소에 주님과의 사귐은 우리가 위기를 만날 때 큰 힘이 됩니다.
유대인의 이야기에 ‘세 친구’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왕이 어느 사람을 왕궁으로 불렀습니다. 이 사람은 혼자 왕궁에 가기가 두려워서 서둘러 친구들을 찾아가 왕궁에 함께 가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첫 번째 친구는 단번에 거절했습니다. 실망한 마음도 잠시, 두 번째 친구를 찾아가 부탁했습니다. 친구는 왕궁 앞까지만 가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불안했던 이 사람은 평소 관계가 소원했던 친구를 찾아가 같은 부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왕 앞까지 동행할 것이니 기쁜 마음으로 마음 편히 함께 가자고 승낙을 합니다.
농부는 바로 우리의 모습을 대변합니다.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언젠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가 사랑하고 믿었던 첫 번째 친구 재물이나 세상 것들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친구인 가족과 친구들은 장례식까지만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평소 잊고 지내기도 하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앞까지 동행해 주십니다. 그래서 친히 우리 믿음의 증인이 돼 주십니다.
예수님은 요 15:13에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라는 말씀으로 우리의 친구임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제 주님과의 사귐을 통해 더 복되고 귀한 역사를 만드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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