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10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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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두 눈은 자연스럽게 떠지고, 머리 속은 어둠속에 있는 공간을 다 헤아릴 듯 해맑게 깨어납니다. 한국을 여행하다 보면 가장 괴롭히는 것이 시차에 적응하는 문제입니다. 빨리 시차를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에 한국에 도착한 날, 오전 PCR검사를 끝내고 난 후 서울 동묘에서 청계천을 따라 광화문으로 그 다음엔 세종문화 회관, 인사동, 종로로 2만 5천보 이상의 걸음걸이를 해 보았지만, 다음 날 아픈 종아리만 확인 될 뿐 여전히 새벽에는 일어나고, 한낮의 밝음은 무거운 눈꺼풀에 가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잠자리에 있는 사람은 벌써 시차 적응이 끝났는지 어둠속에서 가끔 들려지는 작은 코골이로 깊은 숙면에 빠져 있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또 다시 맞이하게 될 피곤한 하루를 생각하면 그 모습이 부럽게 다가옵니다. 빨리 시차적응을 할 수 있다면 저 모습처럼 깊은 잠에 빠지고 가끔 코도 골아보는 잠이 주는 안식을 누려볼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내 몸의 생체 리듬이 한국의 시간과 같이 진행되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보게 됩니다.
맑게 깨어진 머리는 어둠속에서 질문을 합니다. 그렇다면 나의 영성은 하나님 나라에 맞추어져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주님이 품에 안기기 전까지는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없다는 어거스틴의 말처럼 온전히 주님과 하나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속에서 누리는 평안이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져봅니다.
소금인형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바다를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바다를 가 보았는데 해변에 자신과 같은 인형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의 손이나 발, 혹은 몸 한 부분이 없어진 채로 해변을 배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그들도 바다를 알고 싶어서 바다에 손을 넣어 보고 발을 담가 보았으며, 바다를 걸어 들어가 보았는데 그 순간 그들의 몸이 바다에 녹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소금인형도 바다에 발을 담가 보았지만 발만 사라질 뿐 바다를 알 수 없었습니다. 갈등하던 소금인형은 바다를 알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의 몸을 바다에 담그게 됩니다. 그 순간 자신의 몸은 사라지고 온전히 자신이 바다와 하나가 되어지는 깊은 안식과 바다를 알게 되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독일의 시인 릴케는 고백합니다. “내 눈을 감겨 주십시오.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아 주십시오. 그래도 나는 당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을지라도 나는 당신 곁에 갈 수 있습니다. 입이 없을지라도 나는 당신에게 애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된 영성은 우리의 감각과 환경을 넘어 주님을 경험하고 그 분이 주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고향 교회를 방문합니다. 그러나 곧 내가 생각하던 고향 교회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교회의 건물은 커졌고, 교인들은 새로운 성도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교회의 빈자리 속에서 옛날 고향 교회를 떠나 올 때 목을 끌어안고 헤어짐을 아쉬워하던 친구들과 선, 후배들의 모습도 생각나지만 주님의 부르심 속에서 이 자리에 없는 많은 분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발을 구르면서 주일 학교 설교를 해 주시던 장로님. 주일 예배 후 분반 공부를 할 때 열심을 다해 말씀을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들, 여름 성경학교 같은, 교회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가마솥에 밥을 하시고 음식을 요리하시며 수고를 아끼지 아니 하시던 교회 여선교회 성도님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세대는 끊어지고 다음 세대가 교회를 이어가고 있는 이 땅에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처럼 주님이 주신 진리와 은혜에 온전히 잠기는 깊은 영성으로 주님의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이 믿음이 하나님 나라의 평안을 이 세상에서 누리는 성도의 삶으로 인도하게 하실 줄로 압니다.
미국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여전히 몸은 시차 적응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기 전 날 다시 한 번 동묘로부터 해서 종로까지 긴 걸음을 하려고 합니다. 그 걸음은 이 여행을 마무리 하는 길이요, 사랑하는 성도들을 만나기 위한 긴 기도의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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