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82022 “낮은 곳에서 만나는 예수님” > 묵상/칼럼

본문 바로가기

묵상/칼럼

목회단상 12182022 “낮은 곳에서 만나는 예수님”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늘푸른교회
댓글 0건 조회 4,522회 작성일 22-12-20 22:14

본문

   성탄은 모든 사람에게 기쁨이 됩니다. 유명한 코미디언 밥 호프 일행이 1948년 서독에 주둔한 미군 위문공연을 갖게 되었습니다. 철의 장막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 서독 국경 내에서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순서에 따라 꿈속에 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작곡가 얼빈 벌린이 무대에 등장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감미로운 노래가 흘러 나온 지 얼마 안되 장벽 건너편 동독 장병들이 흥얼거리며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곧 이어 찬양 소리는 동서독 병사들이 하나가 되어 부르는 거대한 합창으로 울려 퍼졌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전하여 줍니다.

  성탄이 모든 사람에게 기쁨이 되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임하신 왕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마구간 탄생 사건을 특별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왕이 될 인물의 비천한 출생이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로마의 설립자 로물루스는 바구니에 담겨 티그리스강에 버려졌습니다. 강을 따라 흘러가다 팔라티노 부근 언덕에 걸려 멈춘 것을 늑대가 물어다 젖을 먹였습니다. 페르시아 고레스 대왕도 버려진 아기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마구간 탄생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구간이 이신 예수의 출발점이자 종착지였기 때문입니다. 세상 영웅들은 비루한 곳에서 시작할지라도 화려한 왕궁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예수의 삶은 마구간의 연속이었습니다. 마구간부터 광야, 빈들, 선상, 동굴, 가난한 자들의 집을 거쳐 십자가에서 삶을 마칠 때까지 한순간도 예외 없는 낮아짐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8:20)고 하셨나 봅니다.

  

  ‘마구간 성탄은 기독교가 향해야 할 곳,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가리키는 놀라운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그 마구간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여야 합니다.


    마구간을 잃어버린 기독교는 힘이 없습니다. 능력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더 이상 세상에 복음이 되지 못합니다. 얼마 전 교계 신문에 코로나로 모임은 회복되었지만 교인 수는 감소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의 일인데 왜 부흥하지 않느냐고 하나님의 역사에 불신을 나타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일도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나타나는 일입니다. 낮은 곳으로 임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잃어버린 교회가 부흥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떤 신학자가 말하길 우리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 아들에게 우리 인류가 최초로 준 선물은 구유였으며 마지막으로 준 선물은 십자가였다고 했습니다. 교만한 인간의 마음이 마구간에 계신 주님을 외면하고 메시아를 비천한 자로 만들었습니다. 독생자를 마구간에 오게 하시고 십자가에서 그 몸을 희생 제물로 드리게 하신 이 일을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열심(9:7) 이를 이루셨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우리의 완악함을 벗어던지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마음껏 사용하시고 빚을 수 있도록 낮은 곳으로 임하는 믿음의 열심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