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92023 “칭찬과 말씀이 있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 묵상/칼럼

본문 바로가기

묵상/칼럼

목회단상 0792023 “칭찬과 말씀이 있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늘푸른교회
댓글 0건 조회 3,374회 작성일 23-07-09 17:08

본문

    중국 배우 장궈룽(張國榮)이 2003년 그의 14층 아파트에서 투신하면서 “사는 게 의미 있느냐? 말해 보라. 네 자신을 속여서라도”라는 메모를 남겼습니다. 죽음으로라도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한 그의 절박감에 안타까움을 넘어 우리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자살은 비단 우리 범인들의 얘기만은 아닌가 봅니다. 

   기도의 사람 엘리야도 로뎀나무 아래서 죽고 싶을 만큼 깊은 실의에 빠졌습니다. 잘 풀리지 않는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괴로워하던 선지자 요나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겠다”(욘 4:3)는 독백을 합니다. 재산은 물론 자식조차 모두 잃은 동방의 의인 욥이 고통 속에서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면서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셨는가” (욥 7:20) 한탄합니다. 이들의 탄식 속에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소유하고 조작하기 위 한 대상으로만 여기시지는 않는 건가 하는 원망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닌지요. 


   ‘위기상담학’에서 노만 라이트는 “누구라도 고통이 커지면 육체적, 감정적인 무질서에 빠지기 마련”이라고 했습니다. 상황에 매몰되면 고통이 현실을 평가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막아버린다는 뜻이지요. 저는 위암으로 잠시 목회를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아침에 눈을 뜬다는 것이 큰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습니다. 목회하는 친구들과는 혼자 고립된 것 같고, 이 상황을 바꿀만한 선택권이 나에게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감정, 낙담과 절망이라는 감정은 인간이 만날 수 있는 병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것이라고 하는 점입니다. 

   매리 해스켈은 <타인의 아름다움>이란 글에서 “타인에게서 가장 좋은 점을 찾아내어 그에게 이야기해 주십시오. 우리들은 누구에게나 그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타인의 칭찬 속에 자라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더욱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칭찬으로 하여 사람은 더욱 칭찬받을 만 해지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실한 의식을 갖춘 영혼은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무엇을 발견해 낼 줄 압니다. 칭찬이란 이해입니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누구나 위대하고 훌륭합니다. 누군가를 아무리 칭찬한다 해도 지나침은 없습니다. 타인 속에 있는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을 뜨십시오, 그리고 찾아내는 대로 그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힘을 기르십시오.” 사람의 마음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무엇이든지 담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선을 담을 수도 악을 담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 6:45)고 했습니다. 고해(苦海)와 같은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잘하고 있다고 칭찬과 위로를 나누는 선한 삶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은 말씀으로 살아가십시오. 

   

   위대한 전도자 무디(DL Moody)의 성경책 곳곳엔 ‘T&P’라는 표시가 많다고 합니다. ‘Tested and proved’의 약자입니다. 말씀대로 살았더니 그대로 됐다는 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 ‘너희에 게 평안이 있을지어다’ 라는 말씀도 우리 삶에서 이루어지는 줄로 압니다. 변화의 문이라는 손잡이는 안쪽에 붙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삶의 무게를 이기고 의연히 서서 내 안에 있는 문고리를 돌려 열기로 결정하는 그 순간 하염없이 문 앞에 서서 기다리셨던 우리 주님(계 3:20)의 얼굴을 마주 대하게 될 것입니다. 내 마음 안 에 성육신하신 말씀으로 변화와 희망의 문고리를 돌리시기를 기도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