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09172023 “구원을 이루는 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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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인도에 머물렀던 영국인들은 객지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골프장을 만들었는데 훼방꾼이 나타났습니다. 골프장 주변에 살던 원숭이들이 필드에 떨어진 공을 집어 엉뚱한 곳에 던져 놓곤 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원숭이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담장을 높였지만 효과가 없자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린 곳에서 다시 시작하기'였습니다. 이 규칙은 뜻밖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 공을 원숭이가 잡아서 홀에 넣어주는 행운을 맛본 사람도 있었고, 반대로 홀 가까이 날린 공을 원숭이가 집어다 물속으로 빠뜨리는 불운을 겪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행운과 불운 사이를 이리저리 오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차피 벌어진 일을 한탄하기보다 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린 자리에서 경기를 계속하여 그 순간을 즐겼습니다. 그들은 원숭이가 나타나 어떻게 할까 하고 걱정하기보다는, 있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을 필드에서 배웠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걱정하는 삶을 사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는 근심이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마 6:27)라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근심이 우리의 유익이 됩니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처럼, 먹고 배부르면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누워 잠만 자는 동물보다, 그래도 근심하며 고민하는 인간이 낫습니다. 아무 걱정이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인간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가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과 통증으로 3층 다락방에서 꼼짝 못하고 사흘 동안 고통스러워하다가 의사 친구에게 전화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빨리 오지 않자, 쇼는 신경질이 나면서 더욱 몸이 아팠습니다. 그 때 누군가 밑에서 계단을 황급히 뛰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 친구는 왕진가방을 들고 단숨에 3층을 뛰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다락방 문을 왈칵 밀고 들어서는 순간, 이 의사는 숨을 훅 몰아쉬더니 비명도 못 지르고 그 자리에 고꾸라지고 말았습니다. 화들짝 놀란 버나드 쇼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친구의 심장에 귀를 대어보고, 눈을 뒤집어 보고, 허리띠를 풀고, 인공호흡을 하고, 정신없이 주무른 끝에 친구가 눈을 떴습니다. 친구가 살아났다고 환호하는 쇼에게 친구가 일어나며 말합니다. “나는 가보겠네. 왕진비 내놓게.” “이 사람아, 정신 차려! 쓰러진 건 자넬세. 내가 인공호흡까지 해서 자넬 살렸네.” “그런가? 자네가 병을 고쳐 달라고 했지? 그런데 내가 쓰러지니까 자네는 놀라서 자네 병을 잊고 내게 매 달렸지? 이게 바로 내 치료법일세. 친구야! 인간은 큰 문제에 매달리면 시시한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네. 이제 자네 병은 다 나았으니 왕진비나 두둑이 내놓게.” 보다 중요한 일에 매달리면 시시한 걱정은 사라집니다.
주님의 일에 대한 염려로 세상을 이기고 구원을 이루시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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