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20240128 “순수한 믿음으로 주님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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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수녀를 가까이 했던 사람들마다 그녀의 순수한 인격에 많은 감동을 받았습
니다. 특별히 그녀가 질투 없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주변 사람들에게 커다란 도전을
주었습니다. 어느 날 테레사 수녀와 함께 살고 있었던 한 분이 테레사 수녀가 한 어린
아이의 고름을 만지면서 치료를 하고 있을 때 그녀 곁에 다가와서 이런 질문을 합니
다. “수녀님, 당신은 잘 사는 사람, 편안하게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높은 자리에서 삶
을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을 바라볼 때 시기심이 안 생깁니까? 이런 삶으로 만족하십니
까?” 그때 테레사 수녀는 이런 유명한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수 있는 시간이 없으니까요.” 수건을 동이고 그릇에 물을 담
아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던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사람에겐 세상 자랑과 유혹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참된 만족을 주는 복된 믿음이 됩니다.
‘순수’와 ‘순진’의 차이는 무엇인지요. 순수의 사전적 의미는 “잡것의 섞임이 없는
것”,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진’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이 꾸밈이 없이 순박하고 참되다”, 또는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수룩함”입니다.
그런데 이 순수와 순진의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우리 삶과 신앙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합니다. 살아가면서 ‘순진하다’ 라는 말은 어리석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반면
‘순수하다’ 라는 말은 자신의 소신이 있고, 주관이 뚜렷하다는 것이며 세속에 물들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깨끗하고 투명한 유리잔 두 개가 있습니다. 한 잔에는 맑은 물이 가득 채워져 있고,
다른 한 잔은 비워져 있습니다. 전자는 ‘순수’ 라는 것이요, 후자는 ‘순진’이라는 것이죠.
순수라는 것은 물이 가득 채워져 있어 더 이상 들어갈 틈이 없으니, 깨끗함 그 자체이고요.
순진은 비어 있으므로, 그 안에 순수처럼 깨끗한 물이 담길 수도 있고, 더러운 물이 들어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1장은 더러운 귀신이 사람의 마음에서 나왔지만 쉴 곳을 찾지 못하자
다시 그 사람에게로 왔더니 오히려 전보다 더 깨끗하여 진 것을 보고 혼자가 아니라
자신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왔다고 말씀합니다. 문제는 그 사람의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된 것입니다. 빈 마음이 아니라 오직 복음과 은혜로 채워지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프랑스의 위대한 화가인 장 프랑소와 밀레는 초년에는 시대의 조류에 따라 거의 누
드 형상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 창문에서 두 사람의 젊은이가 자
신의 그림을 보며 음담패설을 하는 것을 듣고, 밀레는 그림의 방향을 바꿀 것을 결심
하였습니다. 그 시대에는 나체 그림이 꽤 좋은 호평을 받고 있어서 화가로서 생활하기
에 풍족했지만, 농부 그림을 그린다고 하는 것은 곧 굶주림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그의 결심을 찬성하였고 그는 누드 그리는 것을 포기하고 농부를 소재
로 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생활은 점점 힘들어져 갔지만 그에게 굶주림만
으로 생각되었던 농부의 그림은 그에게 도리어 불멸의 명성을 얻게 하였습니다. 그는
‘농부의 화가’로 알려졌으며 유명한 그의 그림으로는 ‘씨뿌리는 사람’, ‘양치는 사람들’,
‘이삭 줍는 사람’, ‘죽음과 나무 자르는 사람’ 그리고 유명한 ‘만종’이 있습니다. 특히
‘만종’은 세계 미술의 보물이 되었습니다. 마음이 깨끗하였던 밀레는 그런 심성에서
‘만종’이라고 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죄로 오염된 이 세상에 살면서 자신을 거룩하게 지키며 산다는 것은 단호한
결단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비난과 엄청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으며,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을 바라보았던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결단하여 깨끗한 삶을 따르면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높여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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