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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칼럼

목회단상 20250921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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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늘푸른교회
댓글 0건 조회 403회 작성일 25-09-2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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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는 ‘서양 음악의 아버지’라 불립니다. 그는 9살 때 부모님을 잃고 큰 형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결혼해 일곱 자녀를 낳았지만, 셋을 잃고 얼마 후 아내도 세상을 떠납니다. 오르간 연주자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칸타타 작곡자로 많은 곡을 쓰며 왕성한 활동을 했지만,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노년에는 실명과 뇌출혈로 고통을 겪다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의 위대한 음악성은 멘델스존이 1829년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초연 지휘함으로 알려졌고 결국 19~20세기 ‘바흐 부흥 운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바흐의 인생 자체는 너무도 고단했고 많은 아픔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악보에는 S.D.G.(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를 적으면서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일본의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는 일본이 낳은 성자라고 합니다. 그는 고베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소실을 얻어 서자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기생이었고, 이 일로 그는 학교에 다닐 때 늘 놀림감이었습니다. 10대 후반에 그는 인생을 포기할 정도로 삶에 대한 의욕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구세군이 나팔을 불고 북을 치며 전도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갔습니다. “서자도 예수를 믿을 수 있나요?” 구세군의 대답은 “그럼요, 모든 사람이 다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같은 사람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라는 대답이었습니다. 그 후 그는 고베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의 프린스턴 신학교에 유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그는 빈민을 위한 섬김의 사람이 되었고 사랑의 사람이란 별명도 얻었습니다. 그가 미국에 유학할 당시의 유명한 일화가 남아 있습니다. 나이아가라를 방문한 가가와는 그 경치가 너무 좋아 경치를 보면서 계속 뛰면서 탄성을 질렀습니다. 함께 배를 타고 관광하던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니 의아한 생각이 들어 물었습니다. “그렇게도 좋습니까?” “그럼요, 우리 아버지가 만드신 것인데 얼마나 좋습니까?” 관광객 중의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뉘신지 모르지만 정말 당신의 아버지가 만든 것입니까?” 그 관광객은 목사님이었습니다. 초면이지만 다음 주일의 저녁 설교를 부탁했습니다. 설교 시간이 되자 목사님은 키가 작은 동양인을 이렇게 소개하였습니다. “오늘 저녁 설교해주실 분은 저도 잘 모르는 분이지만 나이아가라 폭포의 주인의 아들입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자는 복된 자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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