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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칼럼

목회단상 20240407 “우리를 위로하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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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늘푸른교회
댓글 0건 조회 12회 작성일 24-04-09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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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이언이라는 열다섯 살 된 소년이 뇌종양에 걸려 수술과 함께 방사선 치료를 받았습니다. 방사선 치료를 받던 브라이언은 머리털이 다 빠지게 되었습니다. 치료를 받은 후 소년은 어느 정도 회복되어 학교에 다시 갈 수 있게 되었고, 마침내 소년이 학교에 모습을 다시 드러내던 날, 교실에 들어선 브라이언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학급 아이들 모두가 머리를 빡빡 밀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친구들은 브라이언이 머리털 하나 없이 오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함께 머리를 밀어버린 것입니다. 친구 브라이언의 자존심이 다치지 않고 그가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뇌종양이라는 고통 속에서도 당당하게 학교에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 보니 브라이언과 학생들이 모두 까까머리가 되어 함께 웃고 울고 있었습니다. 고난과 실패의 현장에서 나눌 수 있는 최대의 위로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함께 있어 주는 것입니다. 고난의 현장에 함께 있어 주는 것입니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말로 위로하라, 말을 할 수 없을 때는 눈물로 하라, 눈물로 할 수 없을 때는 마음으로 하라.”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고난 중에 있는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의 마음만큼 큰 마음이 있는지요. 


   옛날 영국 빅토리아 여왕 때에 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의 아내가 자식을 기다리다 아기를 유산하였습니다. 아내는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실음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여왕이 친히 그녀를 방문하였습니다. 여왕이 방문한 이후 여인은 놀랍게 회복되어 삶의 활력을 되찾게 됩니다. 이런 여인을 보며 도대체 여왕이 찾아와 무슨 말을 해 주었느냐고 묻자 이 여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왕은 제 손을 잡고 꼭 한마디 말을 하셨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어떤지 내가 알아요.’ 그 말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저는 여왕 폐하께서 얼마 전에 나처럼 유산한 것을 기억해 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여왕께서 나 같은 여인까지 찾아온 이유임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그분의 손을 잡고 있는 순간, 이 고난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이상하게 제 가슴을 죄고 있던 고통이 저에게서 떠나갔답니다.” 우리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 중에 가장 큰 고난을 당하셨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헨델은 후기 바로크 음악의 거장입니다. 한때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그의 곡이 발표되는 공연장에 불량배들을 동원, 공연을 하지 못하게 하였고, 헨델은 그 일로 충격을 받아 앓게 되었습니다. 그때 헨델은 무명의 한 시인으로부터 한 통의 격려 편지를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로부터 버린 바 되었으나 하나님이 부활시켜 만왕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힘을 내십시오.” 그 글을 읽고 힘을 얻은 헨델은 23일간 금식을 하며 말씀과 예수님을 묵상하게 됩니다. 24일째 되는 날 하인이 그의 방에 들어갔을 때 헨델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헨델은 환희에 찬 얼굴로 “하늘이 열렸다. 나는 전능왕 메시아를 보았다”고 외쳤습니다. 그때 그는 메시아 중 42번 ‘할렐루야’를 완성하게 됩니다. 충격은 사람을 쓰러지게 하지만, 격려와 위로의 말 한마디는 절망과 좌절에서 일어서게 합니다. 

   절망이 밀려올지라도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라”(신 8:16)는 위로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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